
1905년 일본이 대구역을 건설한 이후 많은 일본인이 자본을 들고 대구로 몰려왔다. 자연스럽게 대구역 주변에 역세권이 형성되었고, 일본 자본가들은 성 안으로 상권을 확장 하려 욕심을 부렸다. 결국, 이듬해에 대구읍성이 허물어지며 신작로가 들어섰다. 당시 만들어진 거리가 바로 북성로이다. 1911년 2월 발행된 조선총독부 관보에 따르면 당시 북성로에는 백화점, 철물점, 양복점, 곡물상회 등 일본인이 운영하는 다양한 가게가 있었다고 한다. 100개가 넘는 상점 중 조선인이 운영하는 곳은 곡물가게 3곳에 불과했다. 즉, 당시 북성로는 일본제국에 의해 수탈되는 상징적인 장소였다. 그러나 대구 최초의 엘리베이터로 유명했던 '미나캉이 백화점'이 들어설 정도로 최대의 번화가로 군림하였다.
무영당은 개성사람인 이근무가 1973년 대구에서는 처음으로 생긴 민족자본으로 만든 백화점이다. 이근무는 무영당에서 이상화시인, 이인성화가, 백기만시인 등 일제강점기 예술인들과 활발히 교류하여 이들을 적극 후원하기도 했다. 지역 학생들에게는 신지식을 보급하는 문화 공간 역할도 했다. 과거로 사라질 위기에 있던 무영당을 대구시가 매입하여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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