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 침략이 가시화되면서 힘을 키워 국권을 되찾으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인재를 길러 독립을 쟁취하려는 노력도 활발해지는데, 이 과정에서 '도서관'을 통해 인재를 길러 내려는 시도가 있 었다. 대구에 세워진 '우현서루(*3. 1※)는 1904년 경주 이씨 가의 금남(호주) 이동진(추포)이 사재로 설립하고 그의 아들인 소남(1) 이일우(후-75)가 운영한 '도서관'이다.
우현서루는 한때 국내외에서 수집한 일만 권의 장서를 보유했다고 하는데, 말 그대로 '만권당 (표,※호)이었던 셈'우현서루'라는 이름은 '현고'를 벗 삼으려는 선비들이 모여 나라를 걱정하고 실력을 기르는 곳이라는 의미로 지었다. 일제 침략과 친일 부역 세력의 준동으로 나라 운명이 풍전등화 같던 시대, 현고처럼 나라를 위기로부터 구할 수 있는 인재를 기르자는 뜻이 '우현서루'에 담겨 있다.
비록 우현서루는 1904년부터 1911년까지 7년밖에 유지되지 않았지만, 이곳을 거쳐간 사람의 면면은 화려하다. 나라를 걱정한 우국지사가 우현서루를 찾았고, 상해 임정 대통령 박은식, 초대 국무령 이동휘, 황성신문 주필 장지연, 도쿄 황궁에 폭탄을 던진 김지섭, 여운형, 김성수를 비롯한 150여 명의 우국지사가 이곳을 찾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현서루가 교남학교로, 다시 대륜 중• 고등학교로 발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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